영화로 읽는 마음의 심리학

영화 <코다(CODA)>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감정의 여정과 가족 안의 치유

mindeulle1 2025. 5. 14. 14:59

 

침묵 속에서 자란 감정 :  루비의 감정 억제

<코다 (CODA, 2021) >는 청각장애인 가족 속 유일한 청인 자녀인 ‘루비’를 중심으로, 가족과 세상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루비는 부모와 오빠를 대신해 세상과 소통하는 다리 역할을 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왔습니다. 이 영화에서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감정은 바로 ‘감정 억제’와 ‘자기표현의 부재’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가족 내 역할 갈등(Role Conflict)과 자기 정체성(Self-Identity) 혼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루비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하게 만든 환경이었습니다. 영화 초반, 루비는 자신의 감정보다 가족의 생계, 일상, 안전을 먼저 고려하며 자기표현을 유보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는 <엘리멘탈(Elemental) >에서 감정을 억제했던 엠버의 내면과도 연결됩니다.

 
 

<코다(CODA)>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감정의 여정과 가족 안의 치유
<코다(CODA)>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감정의 여정과 가족 안의 치유

 

말로 전하지 않아도, 감정은 남는다 :  관계의 이중성

루비와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청각 장애 때문이 아니라, 감정 표현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딸이 자신들과 같은 삶을 살아주기를 원하고, 루비는 그 사랑이 부담이 되어버린 감정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가족 안에서의 감정 억압은 이중적인 심리 구조를 형성합니다. 사랑받고 있지만 자유롭지 않고, 인정받고 싶지만 죄책감을 느끼는 복합 감정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양가감정(ambivalence)’이라 부르며, 이는 자아 성장의 핵심 장애 요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지점은 <원더( Wonder) >에서 가족의 기대와 외부 시선 사이에서 고통받는 어기의 내면과도 닮아 있습니다. 가족은 따뜻한 공간이면서도, 때로는 자기감정을 숨기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목소리를 되찾는 순간  :  자기표현과 정체성 회복

영화의 전환점은 루비가 합창단에 들어가면서 시작됩니다.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단지 음악적 재능의 발견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처음으로 ‘목소리로 말하는’ 행위였습니다. 선생님 비야로보스의 존재는 감정적 안내자이자, 루비가 억눌러온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심리적 피난처’ 역할을 합니다. 치유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적 촉진자(emotional facilitator)’라 부르며, 감정이 억제된 상태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루비는 합창과 오디션 준비 과정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의식하고, 그 감정에 말과 멜로디를 입힐 수 있게 됩니다. 그녀의 정체성은 가족의 연결자에서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바뀌어 가며, 이 과정은 감정 통합과 자아 회복이라는 심리적 변화를 수반합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  감정적 독립과 애착의 균형

코다의 후반부는 단지 ‘이별’이 아닌 ‘감정적 독립’을 다룹니다. 루비는 가족을 떠나 노래를 하기 위해 버클리 음대에 지원하고, 이는 가족에게는 큰 충격이지만 결국 그녀의 꿈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감정이 정돈됩니다. 여기서 핵심은 단절이 아닌, ‘애착을 유지하면서도 독립하는 법’을 가족 모두가 배운다는 것입니다. 이는 발달 심리학에서 ‘정서적 분화(emotional differentiation)’라 불리는 개념으로, 성인이 되는 핵심 심리적 과업 중 하나입니다. 루비의 부모는 딸이 떠난다는 사실보다, 자신들의 감정 세계를 루비에게 강요했다는 사실을 마주하면서 변화합니다. 이는 부모-자녀 관계에서 감정 이해가 일방향이 아닌 상호작용적 구조임을 영화는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루비는 더 이상 ‘번역자’가 아닌, 자신의 감정을 노래할 수 있는 ‘독립된 주체’가 됩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 감정적 독립과 애착의 균형
< 출처 : 코다 공식 홈페이지 >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치유가 시작됩니다

코다는 감정적으로 조용하지만 깊은 파동을 일으키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전달하는 치유의 핵심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감정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게 표현되는 것일 뿐이다.”
루비는 말하지 않아도 사랑받고 있었으며, 부모 역시 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감정은 소리로만 전달되지 않습니다. 눈빛, 손짓, 거리감, 침묵까지도 감정의 언어입니다. 코다는 이 다양한 감정의 언어를 통합함으로써 진짜 치유란 서로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굿 윌 헌팅>에서 윌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반복적인 말로 감정을 수용받을 때 비로소 무너졌던 장면과도 궤를 같이합니다. 치유는 명확한 해답이 아니라, 감정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주는 데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