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마음의 심리학

영화 <더 파더(The Father)> 혼란 속 감정을 붙잡는 치매와 치유의 심리학

mindeulle1 2025. 5. 18. 07:10

 

 주인공의 시점  :  감정이 먼저 혼란스러워지는 시간

<더 파더>는 치매 환자인 앤서니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이 붕괴되는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인지적 혼란을 직접 체험하게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지 기억의 왜곡이 아니라 감정의 혼란입니다. 앤서니는 자신이 있는 공간이 집인지 요양원인지 혼란스러워하고, 곁에 있는 사람이 딸인지 낯선 사람인지 헷갈려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가 느끼는 불안, 두려움, 혼란, 외로움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억 상실이 아니라, ‘감정 인식의 해체’가 먼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치매 초기 증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정체성 혼란’과 ‘감정적 분리’**의 조합이며, 자아 감각이 붕괴되면서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관객은 이러한 왜곡된 시공간 속에서, 기억보다 감정이 먼저 무너진다는 심리적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더 파더(The Father)> 혼란 속 감정을 붙잡는 치매와 치유의 심리학
<더 파더(The Father)> 혼란 속 감정을 붙잡는 치매와 치유의 심리학

 
 

딸과의 관계  :  애착이 붕괴될 때의 감정

앤서니와 딸 앤의 관계는 영화의 중심 감정축입니다. 딸 앤은 아버지를 진심으로 돌보고자 하지만, 앤서니는 딸을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합니다. 어떤 날은 그녀를 친숙하게 느끼고, 어떤 날은 낯선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딸이 자신을 버리려 한다는 의심 속에 분노하거나, 간절하게 그녀를 찾으며 눈물을 보입니다. 이처럼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감정이 왜곡될 때 발생하는 고통은 매우 복합적입니다. 보호받아야 할 위치에 있는 부모가 자녀를 위협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될 때, 그 감정의 충돌은 관계 자체를 붕괴시키기도 합니다. 딸 앤은 간병자로서 책임을 다하면서도, 감정적 고갈과 무기력을 겪습니다. 이는 현실에서도 간병자들이 자주 겪는 **‘감정 소진(emotional burnout)’**의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이러한 애착의 붕괴는 영화 <코다(CODA)>에서 루비가 가족을 책임지는 위치에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게 되는 장면과도 유사합니다. 가족 안에서의 감정 갈등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이 영화는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기억의 무너짐  :  감정까지 지워질 수 있을까

기억이 사라진다고 감정까지 사라지는 것일까요? <더 파더>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줍니다. 기억은 희미해져도, 감정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법입니다. 앤서니는 자신의 집인지 병원인지,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지만, 딸에 대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의 눈빛과 표정, 반복되는 질문 속에는 여전히 사랑, 슬픔, 상실,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신경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입니다.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편도체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보다 퇴행 속도가 늦기 때문에, 기억보다 감정이 오래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신경학적 사실을 감정의 흐름 속에서 섬세하게 풀어냅니다. 이는 <이터널 선샤인>에서 사랑의 기억을 지우려 해도 감정만은 남는다는 주제와도 닿아 있습니다. 기억이 사라져도 감정은 존재하며, 그 감정이야말로 인간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메시지를 영화는 반복해서 전달합니다.
 
 

감정을 수용하는 용기  :  딸과의 이별 장면

영화의 후반, 앤서니는 요양원에서 혼자 남겨집니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 채 점점 어린아이처럼 퇴행해 갑니다. 그리고 울먹이며 말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이 한 마디는 그가 겪는 모든 정서적 고통을 응축한 상징적인 문장입니다. 그의 자아는 붕괴됐지만, 감정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는 딸을 찾고, 자신이 버려졌다는 감정에 휩싸여 울부짖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치매 환자의 고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마침내 수용하는 과정, 즉 ‘감정의 인정과 해방’**을 보여줍니다. 심리학에서 이는 ‘수용(acceptance)’이라는 회복의 단계로,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누르는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회복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이는 <룸>에서 조이가 감금되었던 방으로 다시 돌아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는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진정한 감정의 수용이 일어날 때, 치유는 시작됩니다.
 
 

더 파더
< 출처 : 더 파더 공식 홈페이지 >

 
 

진짜 치유는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더 파더>는 치매라는 병리적 상태를 다루지만, 궁극적으로는 감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앤서니는 기억을 거의 모두 잃었지만, 외로움, 두려움, 사랑, 애착 같은 감정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습니다. 그는 병상에 누운 채 세상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며, 감정적으로 점점 더 고립되어 갑니다. 그러나 영화는 말합니다. 치유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존재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혼란이나 눈물, 감정적 폭발을 비논리적이라 여기지만, 그 안에는 절박한 존재의 언어가 숨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의 인정(recognition of affect)’**이라 부르며, 그 자체로 회복의 가능성을 품는다고 봅니다. <더 파더>는 감정이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아름답고도 슬프게 보여줍니다. 기억은 잊혀질 수 있어도, 감정은 인간이기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