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마음의 심리학

<더 선(The Son)> 청소년 우울과 가족 내 감정의 단절을 마주하는 심리 드라마

mindeulle1 2025. 5. 26. 18:10
영화 더 선은 청소년의 내면과 부모의 죄책감을 감정 심리학적으로 조명하며,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억눌린 감정들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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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선(The Son)> 청소년 우울과 가족 내 감정의 단절을 마주하는 심리 드라마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단절된 감정의 시작

영화 <더 선 (The Son, 2022) >은 이혼한 부부와 그들 사이의 아들 니콜라스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니콜라스는 겉보기엔 단순한 반항 청소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심각한 우울증과 감정적 고립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엄마의 곁을 떠나 아버지 피터의 집에서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피터는 새 가정에서의 삶과 커리어 사이에서 니콜라스의 감정 신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표면적인 대화로 문제를 덮으려 합니다. 이처럼 감정이 무시되거나 가볍게 다뤄지는 관계 속에서 청소년은 자신을 더욱 폐쇄적으로 감추며, 고립된 감정 속에서 고통을 키우게 됩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정서적 무시(emotional neglect)'가 자존감, 자기정체감 형성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부모의 죄책감, 감정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이됩니다

피터는 전처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새 아내와 아기를 돌보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의 과거 선택이 아들에게 미친 영향을 직면하지 못합니다. 그는 니콜라스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동시에 아들의 감정 상태를 “시기적인 반항” 정도로 여기는 방어적 태도를 보입니다. 이는 심리학에서 '인지적 부인(cognitive denial)'이라 불리는 반응으로, 현실을 직시할 경우 느껴질 감정적 고통을 피하기 위한 방어기제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의 감정적 회피를 직감하며, 자신이 ‘불편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이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처럼, 부모가 감정을 마주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죄책감만 쌓아가는 구조로 이어집니다. 죄책감은 회피할수록 더 강해지고, 결국 감정적으로 아이를 더 멀리 밀어냅니다.

 

 

부모의 죄책감, 감정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이됩니다
< 출처 : 더 썬 공식 홈페이지 >

 

 

청소년 우울은 단순한 슬픔이 아닌, 깊은 정서적 고립입니다

니콜라스는 자해 시도, 사회적 철수, 감정적 무기력 등 전형적인 중등도 이상의 청소년 우울 증상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말로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대신, 행동과 표정, 침묵으로만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는 청소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비언어적 정서 표현’의 특성으로, 부모나 주변 성인이 적절한 감정 해석 능력을 갖지 못할 경우 위험 신호를 간과하게 됩니다. 니콜라스는 치료 시설에 잠시 입원하지만, “나 이제 괜찮아졌어요”라는 말을 믿고 조기에 퇴원하게 됩니다. 이는 그가 감정을 숨기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심리적 절박함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결국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채, 내면의 고통으로 남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부정된 감정의 축적(suppressed affect accumulation)’이라 하며, 극단적 자해나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감정을 직면하지 않으면, 회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피터는 니콜라스가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이제 괜찮아졌다는 환상에 안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샤워를 하겠다며 방으로 들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감정의 회복이 겉모습이나 언어적 표현만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치유 심리학에서 강조하는 ‘감정 직면(affective confrontation)’이 부재할 경우, 감정은 억눌린 채 더욱 위험하게 내면화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피터는 아들의 환영을 상상하며 "만약 내가 그때…"라고 중얼거립니다. 이 환상은 심리학적으로 '감정적 부채(emotional debt)'의 형태이며, 상실 이후에도 감정은 끊임없이 과거를 호출하며 남아 있는 사람을 괴롭힙니다. 이 구조는 <더 파더(The Father)>에서 치매를 통해 감정의 해체를 보여준 플로리안 젤러 감독 특유의 심리 서사와도 연결됩니다.

 

 

감정은 돌봄으로 치유되지 않고, 이해로 회복됩니다

<더 선>은 감정의 치유를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뼈아프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피터와 케이트는 분명 아들을 사랑했지만, 그의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 작품은 감정을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무엇인지를 질문합니다. 감정은 위로하거나 안아준다고 해서 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 어린 경청과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 그리고 감정의 실재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치유의 시작입니다. 이는 <조용한 소녀>에서 말 없는 가족이 점차 감정을 비언어적으로 전달하며 치유되는 서사와도 닮아 있습니다. 감정은 애정의 양이 아니라, 정확한 공감의 깊이에서 회복을 시작합니다. 영화는 부모에게 감정적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외면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