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마음의 심리학

<디 에이트 마운틴(The Eight Mountains)> 고독과 우정 속에서 감정을 회복하는 여정

mindeulle1 2025. 5. 27. 17:35
영화 디 에이트 마운틴은 자연과 관계, 그리고 내면의 감정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깊이 있는 심리학적 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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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이트 마운틴(The Eight Mountains)> 고독과 우정 속에서 감정을 회복하는 여정

 

 

 산이라는 공간, 감정을 머무르게 하는 고요한 시간

<여덟 개의 산 (The Eight Mountains, 2022) >은 이탈리아 알프스 산골 마을 ‘그라나’를 배경으로, 도시에서 온 소년 피에트로와 시골 소년 브루노가 어린 시절 맺은 우정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됩니다. 두 사람은 여름의 짧은 시간 동안 깊은 감정적 교감을 나누지만, 환경과 가족 상황의 차이로 인해 결국 멀어지게 됩니다. 영화는 그들의 삶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지며 서로 다른 ‘감정 처리 방식’을 가진 인물들이 어떻게 다시 마주하는지를 조용히 추적합니다. 자연은 두 인물의 갈등과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머물게 하고 기다려주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자연 기반 회복(nature-based healing)’ 개념과 연결되며, 인간의 감정이 외부 자극이 아닌 조용한 반복과 자연의 리듬 속에서 정리될 수 있다는 점을 상징합니다. 산은 감정을 말하게 하지 않고, 대신 감정이 머물 공간을 마련해 줍니다.

 

 

남성성의 껍질 속, 감정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어릴 때부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라납니다. 피에트로는 도시에서 방황하며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만, 브루노는 산에서 묵묵히 일하며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이 두 인물은 전형적인 ‘내면적 고립’을 지닌 남성 캐릭터로, 감정을 말하기보다는 삶의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침묵의 우정을 통해, 남성성 안에 감정이 어떻게 잠재되어 있으며, 그 감정이 어떻게 회복을 위한 매개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감정을 말하지 않더라도, 함께 집을 짓고, 산을 오르며, 눈을 마주치며 나누는 감정 교류는 **‘비언어적 감정 소통(non-verbal emotional communication)’**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브루노는 삶 전체를 산에 바친 인물로, 감정을 자연 속에 묻은 채 살아가지만, 그 내면에는 누구보다도 깊은 감정의 정직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함께 지은 집, 감정을 공유한 공간

피에트로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산을 찾고, 생전에 아버지가 브루노와 함께 지으려 했던 산 속 집을 완성하기 위해 브루노와 협업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건축 행위가 아니라, 감정의 화해와 관계 회복의 은유적 장치입니다. 두 사람은 말은 적지만 함께 무언가를 쌓고, 때로 무너지기도 하며 감정을 축적해 갑니다. 이 과정은 심리학적으로 ‘공동행동 기반 감정 치유(co-regulation through joint activity)’로 불리며, 말보다 행동을 통한 감정 조율이 보다 강력한 연결감을 제공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서로 다른 감정을 품고 살아왔지만,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감정을 머물게 하고 공유하게 됩니다. 그 집은 단지 벽돌과 나무로 된 구조물이 아니라, 감정이 차곡차곡 담긴 장소이며, 함께한 시간이 축적된 감정의 그릇입니다.

 

 

여덟 개의 산과 하나의 중심 – 감정의 정체성과 위치 찾기
< 출처 : 여덟 개의 산 공식 홈페이지 >

 

 

여덟 개의 산과 하나의 중심 – 감정의 정체성과 위치 찾기

피에트로는 이후 여행자로서의 삶을 택하며 네팔로 떠나게 됩니다. 그는 현지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로부터 '세상은 여덟 개의 산과 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메루산으로 이뤄져 있다'는 개념을 듣고 브루노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피에트로는 자신을 ‘여덟 산을 떠도는 자’로, 브루노는 ‘메루산을 지키는 자’로 묘사합니다. 이는 감정적 정체성의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이자, 감정을 직면하는 방식에 대한 철학적 은유입니다. 브루노는 하나의 산을 지키며 감정을 일생 동안 간직하고 있는 자이고, 피에트로는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탐색하며 감정의 흐름 속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이 대화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감정의 지속성과 회상을 언어 없이 교감하는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결국 감정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어디에서 머무르거나 떠날지를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끝나지 않은 이별, 감정을 품은 산이 남습니다

영화는 브루노가 폭설 속에서 실종되고, 이후 눈 속에서 발견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을 암시하며 끝납니다. 이는 브루노라는 인물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삶 전체를 감정으로 살아온 인물임을 되새기게 만듭니다. 피에트로는 그 산에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자각하며, 감정의 상실과 고독을 받아들이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감정의 애도 과정(emotional grief process)’에 해당하며, 상실된 관계를 외면하지 않고 품고 가는 방식으로 감정을 수용하는 장면입니다.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감정을 함께 나눈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공유했던 공간, 기억, 고요한 시간은 피에트로의 감정적 성장과 정체성 형성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가 마지막에 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웃는 장면은 감정이 반드시 슬픔으로만 남지 않으며, 삶의 움직임 속에서 흘러가게 된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