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마음의 심리학

<더 아워스(The Hours)> 세 여성이 마주한 감정의 파편과 치유의 실마리

mindeulle1 2025. 5. 28. 10:43
<더 아워스>는 시대를 넘나드는 세 여성의 감정과 정체성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우울과 자아의 심리를 치유 심리학적으로 탐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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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아워스(The Hours)> 세 여성이 마주한 감정의 파편과 치유의 실마리

 

 

세 여성, 세 시대, 하나의 감정

영화 <더 아워스(The Hours, 2002)> 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매개로 1923년의 울프, 1951년의 주부 로라, 2001년의 편집자 클라리사 세 여성의 삶이 교차하며 전개됩니다. 각자의 시대에서 다른 삶을 살지만, 세 인물 모두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데 따르는 고통과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못한 채 숨기거나 억누르며 하루를 살아갑니다. 울프는 정신 질환과 사회적 제약에 억눌리고, 로라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자아가 부정된 채 존재하고, 클라리사는 과거 연인인 리처드의 죽음을 마주합니다. 이처럼 세 인물의 하루는 외형상 전혀 달라 보이지만, 감정의 밑바닥에서 흐르는 정서는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이는 감정 심리학적으로 ‘세대 간 감정 공명(emotional resonance across generations)’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여성의 내면 감정은 시대를 넘어 공명합니다.

 

 

우울, 삶 속의 소음이 아니라 고요한 울림입니다

울프, 로라, 클라리사는 모두 우울의 그림자 안에 서 있습니다. 특히 울프는 심각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이로 인해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끊임없는 긴장과 감정적 거리감을 겪습니다. 로라는 단란한 가정 속에서도 자신이 ‘살고 싶은 삶’과 ‘살고 있는 삶’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며 자살을 시도합니다. 클라리사는 과거 사랑했던 남성 리처드를 지키고자 하지만, 리처드는 AIDS와 우울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처럼 <더 아워스>는 우울을 개인의 나약함이 아닌, 사회와 관계, 정체성의 충돌에서 비롯된 감정의 총합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단지 질환으로만 바라보기보다는, 감정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의 부재로 인한 침묵의 병리로도 이해됩니다. 치유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우울은 외부의 공감과 해석 가능성 속에서 완화될 수 있는 감정 구조입니다.

 

 

감정의 해석은 정체성의 재구성입니다

로라는 주부로서의 정체성과 여성 개인으로서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억눌리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선택한 도피는 단순한 도망이 아니라, 자기 생존을 위한 정서적 판단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클라리사의 집을 찾아가, “내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리처드는 자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아이러니하게 들리지만, 자신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되었다면 더 큰 비극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직감에서 나온 통찰입니다. 감정 심리학적으로 이는 ‘정서적 자기보존(emotional self-preservation)’이라 하며, 자기 파괴와 회피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의 감정적 전략이기도 합니다. <더 선 (The Son) >에서 청소년 우울을 부모가 이해하지 못했던 장면과 비교하면, <더 아워스>의 여성들은 스스로 감정을 감당하고 책임지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감정의 해석은 정체성의 재구성입니다
< 출처 : 디 아워스 공식 홈페이지 >

 

 

관계는 치유의 시작이자, 고통의 거울입니다

클라리사는 리처드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지만, 정작 리처드는 이를 ‘구속’이라 느끼며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 장면은 사랑과 구원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정적으로 보여줍니다. 클라리사는 그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빠지고, 자신이 ‘댈러웨이 부인’처럼 관계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는 '관계 중독' 혹은 '정서적 의존(emotional dependency)'에서 벗어나려는 자각의 순간이며, 감정적 회복의 초기 단계라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 감정을 나누고 회복하지만, 그 관계가 감정을 왜곡하거나 억압할 경우 오히려 치유보다 상처를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 복잡한 감정의 고리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감정을 치유하려면 관계 속의 위치를 재정립해야 함을 제안합니다.

 

 

감정의 시간, 나를 이해하는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더 아워스>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하루는 수십 년을 관통하는 감정의 밀도를 품고 있습니다. 울프는 소설을 씁니다. 로라는 자살을 시도합니다. 클라리사는 파티를 준비합니다. 모두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을 하지만, 그 일상 속에서 감정은 말없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휩쓸고, 잠잠해집니다. 이 영화는 “살아간다는 건 어떤 감정을 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감정 통합(emotional integration)’이며, 억누르지 않고, 과장하지 않고, 감정을 그대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감정적 성숙의 상태를 지향합니다. <디 에이트 마운틴>이 고요한 자연 속에서 감정을 회복했다면, <더 아워스>는 시대의 틈과 일상의 시간 속에서 감정을 통과하게 합니다. 감정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삶과 동행하며 나를 설명해 주는 가장 정직한 언어입니다.